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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ary

// 사노 요코 라는 일본 작가가 쓴 그림 동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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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만 번 산 고양이가 있다. 거꾸로 말하면 99만9999번 죽었다는 말이다.

언젠가 고양이는 임금님의 애완동물이었다. 어느날 전쟁터를 따라나갔다가 화살에 맞아 죽는다.
뱃사공의 고양이었을 때는 물에 빠져 죽고, 서커스단의 재주꾼으로 태어났을 때는 마술사의 톱에
몸이 싹둑 잘리는 사고로 죽는다.

고양이의 거듭된 삶과 죽음은 두 가지 의미를 지닌다. 먼저 나 자신을 위한 삶이 아니면 의미가
없다는 것. 왕과 뱃사공과 도둑은 고양이가 죽었을 때 슬퍼하지만, 자신이 아닌 남을 위한 삶이었기
때문에 고양이는 그들과의 이별을 슬퍼하지 않는다.

둘째, 삶의 진정성은 오직 한 번의 삶으로 완성된다. 죽음이 환생을 통해 새로운 삶으로 연결되기
때문에, 고양이는 수많은 죽음을 통해 이 길로 가보고 저 길로도 가본다. 삶은 가벼움이자 오락이고,
죽음은 새 길로 들어서기 위해 잠시 대기하는 정류장 같은 것이다.

100만 번째 탄생은 도둑고양이였다. 주인 없는 고양이가 된 후에야 그는 처음으로 스스로 선택한
삶을 살 수 있게 됐다. 그러나 고양이는 이미 삶의 진정성을 잃어버린 지 오래다. 고양이에게
삶은 영화 ‘죽어야 사는 여자’에서 계단 아래 뒹굴던 골디 혼과 메릴 스트립의 깨어진 몸들처럼
더럽고 비참한 꿈의 파편일 뿐이다. 인생에서 실패했다고? 그럼 죽었다가 다시 살아버리면 된다.

고양이는 어느날 사랑해야 할 대상을 발견한다. 그는 100만 번이나 살았지만 이 암컷과의 만남은
오직 이번 생에서만 가능함을 깨닫는다. 그녀와의 사이에 태어난 사랑하는 아이들 또한
다음 번 생에서는 만날 수가 없다.
고양이는 처음으로 사랑하는 가족과 오래도록 같이 살기를 소망한다.

세월이 흘러 아내가 죽었을 때, 고양이는 자신이 99만번 이상 해 보고도 몰랐던 그 의미를 깨닫고
눈물 흘린다. 그렇게 울다가 따라 죽은 고양이는 이후 두 번 다시 환생하지 않았다.
이것이 고양이가 100만1번째 삶을 살지 않게 된 이유이다.
사랑하는 이들에게 바친 자신의 진정성을 환생이라는 행위로 더럽히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