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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ory

괭이부리말 아이들

2004.04.08 22:09

다정이라고 조회 수:1321

쉽게 읽어내지만 책을 덮으면 거울처럼 맑게 글의 배경이 환하게 드러나는 글이 좋은 글이라 했던가. 《괭이부리말 아이들》은 처음부터 끝까지 아주 편하게 읽을 수 있었다. 간결한 문장으로 시원시원하게 써 내려간 글과, 생생한 대화글 덕에 편안하게 술술 읽혔다. 그러나 《괭이부리말 아이들》 마지막 장을 덮으며 나는 한참 담담하게 앉아 있었다. 억장이 무너져 내리지도 않았고, 눈물이 앞을 가리지도 않았고, 바닥까지 가라앉지도 않았다. 그러나 담담한 가운데 《괭이부리말 아이들》은 바로 글쓴이 자신이 살아온 이야기이고, 또 앞으로 살아갈 진실한 삶의 이야기라는 걸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이 진실한 삶의 글쓰기가 주는 잔잔한 울림은 시간이 흐를수록 깊은 울림으로 다가온다.
부가 넘쳐나는 우리 시대의 한 켠에서 헐벗고 소외된 채 살아가는 아이들과 아이들에게 다가온 어른들 삶을 성실하게 풀어낸 이 동화는 많은 이야기를 생략해 버렸지만, 생각하면 할수록 그 진실함이 주는 무게에 머리가 숙여질 뿐이다.
갯벌을 메워 만든 인천의 변두리 가난한 마을. 떠밀리고 떠밀리다 이제는 더 이상 물러날 곳이 없는 사람들이 조개무지 집을 지어 살고 있는 곳, 괭이부리말. 이 마을에 숙자·숙희·동수·동준·명환·호용이와 같은 아이들이 살고, 그 아이들 옆에 영호 삼촌과 김명희 선생님이 있다. 《괭이부리말 아이들》은 이들의 이야기이다.
당장 먹고 살 길이 없는 사람들은 살 길을 찾아 숨가쁘게 움직여야 한다. 삶의 여유도, 삶의 질도 먹고사는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한 영원한 사치일 뿐이다. 집안의 평화도, 착실히 공부하여 출세하는 삶도 저 먼 곳에 꿈으로 존재할 뿐이다. 가난한 삶, 힘든 노동에 지치고 찌든 부모들은 서로 아픔을 자극하면서 싸우게 되고, 돈을 벌기 위해 괴로움을 잊기 위해 집을 나간다. 부모들이 없는 집에서 아이들은 배고픔과 외로움에 병들고 지쳐 간다. 부모 없는 빈자리를 채우려 서로 한데 어울려 다니고, 같이 밥을 먹으며 생활을 나눠 보지만 외로움을 달래기에는 턱없이 부족하다. 괭이부리말의 숙자 숙희 쌍둥이 자매는 그 속에서 살아간다. 부모의 따스한 가르침이나, 잘 짜여진 학습, 맛있는 음식, 좋은 옷은 이들에게 현실이 아니다. 소꿉살이 같은 어린날의 행복은 괭이부리말 저 너머에 있을 뿐이다.
어른들이 집을 나가 도피처를 찾듯이 아이들도 몸과 마음이 쉴 수 있는 곳을 찾게 된다. 현실에서 몸과 마음을 편하게 누일 수 있는 터를 찾지 못하면 환상 속에서라도 찾아야 한다. 아이들은 배고픔을 잊기 위해서 다른 아이들 돈을 뺏고, 가로챈다. 또 그 돈으로 외로움을 잊기 위해 본드를 한다. 돈 벌러 나간 뒤 소식이 없는 어머니 아버지를 그리워하며 거리를 떠도는 동수. 동수는 본드를 하면서 배고픔과 외로움을 잊고, 학교 골목길에서 무리들과 어울려 아이들 돈을 빼앗는다. 그 돈으로 다시 본드를 사서 환각 속으로 빠져드는 날들을 되풀이한다. 동수는 환각 속에서 엄마 아버지를 만난다. 자본의 힘에서 밀려나 밑바닥 삶을 살아가는 동수는 어쩌면 자본의 병든 짐을 가장 많이 짊어진 아이인지도 모른다. 삶의 모순이 아닐 수 없다. 아버지한테 두들겨 맞고 집 나간 동생을 막지 못한 죄책감에 사로잡혀 있고, 자기 또한 집을 나온 명환이도 동수와 같이 거리를 떠돈다.
가난은 사람을 빨리 철들게 한다. 일찍이 가난의 굴레를 눈치챘지만 착실하게 살아가는 동준이와 숙자를 보면 어쩌면 이 아이들이 온몸으로 시대와 사회를 항변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동수는 현실에 반항하면서 자기 자신을 갉아먹고 옆사람들을 힘들게 하지만, 동준이와 숙자는 자기 앞길을 씩씩하게 헤쳐나가면서 남도 헤아릴 줄 안다. 그래서 온몸으로 반항하고, 바닥까지 무너지는 동수가 괭이부리말 아이들 가운데 가장 약한 아이로 느껴지고 마음이 많이 간다.

          -by.다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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