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들에게 희망을. 5장.

5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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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무늬 애벌레는 이번에는 훨씬 빨리 올라갔습니다. 그는 밖에서 휴식을 취했다. 때문에 몸집도 컸고 힘도 더욱 세었습니다. 처음부터 그는 꼭대기에 도달하겠다고 단단히 마음을 먹었습니다.
그는 특히 다른 애벌레들과 눈이 마주치지 않도록 조심했습니다. 그는 그러한 만남이 얼마나 치명적일 수 있는가를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는 노랑 애벌레에 관해 생각하지 않으려고 애썼습니다.
그는 감상적인 생각이 들지 않도록 그리고 잡념이 생기지 않도록 마음을 다그쳐 먹었습니다.
다른 애벌레들이 보기에 그는 그저 단순히 <엄격한> 것이 아니라 무자비할 정도였습니다.
기어오르고 있는 애벌레들 가운데서 그는 특이한 존재였습니다.  
그는 자신이 다른 애벌레들에게 적대적이라고는 생각지 않았습니다. 그는 꼭대기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하지 않을 수 없는 일을 하고 있을 따름이었으니까요.
만약 누군가가 불평이라도 한다면 그는 이렇게 말했을 것입니다.
「네가 성공을 못했다고 나를 <원망>하지는 말라! 우리의 이 삶은 험난한 것이야. 그저 마음을 굳게 먹으라구.」 
그러던 어느 날 그는 그의 목적지에 가까이 와 있었습니다.
줄무늬 애벌레는 이제까지 잘 해냈습니다 마는 마침내 꼭대기에서 빛이 스며 들어오는 지점에까지 이르렀을 때는 거의 기진맥진해 있었습니다.
이 높이에서는 거의 아무런 움직임도 없었습니다.
모두들 여기까지 기어오르는 기나긴 세월 동안 익힌 기술을 총동원해서야 간신히 제 자리를 지킬 수 있었습니다.
조금만 움직여도 그것은 치명적인 것이었습니다.
이곳에는 아무런 대화도 없었습니다.
그저 겉껍질만이 닿아있을 뿐이었습니다.
그들은 서로에게 고치 속에 숨어 버린 존재와 같았습니다.

어느 날 줄무늬 애벌레는 자기 위에 있던 애벌레가 하는 말을 듣게 되었습니다.
「<저놈들>을 없애 버리지 않고는 아무도 더 높이 올라갈 수 없겠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서 그는 굉장한 압력과 진동을 느꼈습니다.
그 순간 비명소리와 함께 몇 마리가 아래로 떨어져 갔습니다.
그러고는 잠잠했습니다. 이제 빛이 더욱 밝게 비쳐왔고.
줄무늬 애벌레는 이 새로운 사실에 크게 놀랐습니다. 이 기둥의 신비가 밝혀진 것이었습니다.
그때 그 세 마리 애벌레에게 일어난 일이 무엇인지 그는 이제 알게 된 것입니다.
이 기둥 위에서 반드시 생기게 마련인 일을 그는 지금 깨달은 것입니다.
좌절감이 줄무늬 애벌레에게 파도처럼 덮쳐왔습니다.
그러나 이거서이 <올라가는> 유일한 길이라고 여전히 믿고 있을 때, 그는 꼭대기에서 이렇게 속삭이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야, 이 꼭대기에는 아무것도 없구나!」 다른 애벌레가 대꾸했습니다.
「이 바보야, 조용히 해! 저 밑에서 듣잖아. <저들이>올라오고 싶어하는 곳에 우리는 와 있는 거야. 여기가 바로 거기야.」
줄무늬 애벌레는 등골이 오싹했습니다. 
이렇게 높이 올라온 것이 별것이 아니라니! 아래에서 볼 때만 좋은 것처럼 보였을 뿐이었구나.
위에서 속삭이는 소리가 다시 들려왔습니다.
「야, 저기를 봐라, 또 다른 기둥이 있네 – 저기에도 또 있고 – 사방에 다 있네!」
줄무늬 애벌레는 실망과 더불어 분노를 느꼈습니다.
「내가 올라온 이 기둥이 단지 수많은 기둥들 가운데 하나라니. 숱한 애벌레들이 기어오르는 것이 아무 곳에도 이르는 길이 아니라니! 무엇인가 정말 잘못되어 있는 것이 분명한데, 하지만… 다른 무엇이 있단 말인가>」 하고 그는 신음을 했습니다.
노랑 애벌레와의 생활은 아득한 옛이야기 같았습니다.
아니, 그런 것만도 아니었습니다.
「노랑 애벌레야!」 그녀의 모습이 눈앞에 생생히 떠올랐습니다.
「너는 무엇인가 알고 있었지, 그렇지? 기다림이 곧 <용기>였던가?」
「그녀의 말이 옳았었는지도 몰라. 그녀와 함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내려갈 수 있을 거야. 아마 우스꽝스럽게 보이겠지, 하지만 여기에서 일어나는 사태보다야 낫지」 하고 그는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줄무늬 애벌레는 자기와 같은 높이에 올라와 있는 애벌레들이 갑자기 꿈틀거리는 바람에 더 이상 생각할 여유가 없었습니다. 
모두들 제각기 꼭대기로 올라가는 통로를 찾아 마지막 안간힘을 쓰는 것 같았습니다. 
그러나 밀면 밀수록 꼭대기에 있는 몸들은 더욱더 꼼짝달싹도 안했습니다.
마침내 한 애벌레가 숨을 몰아쉬며 말했습니다.
「우리 모두가 힘을 합해서 밀지 않으면 아무도 맨 꼭대기까지 갈 수 없을 것 같다. 한번 힘껏 <일제히> 밀어 보자!
위에 있는 놈들이 언제까지나 우리를 못 올라가게 할 수는 없을 거야!」

그러나 그들이 행동에 돌입하기 직전에 함성과 함께 또 다른 술렁임이 있었습니다.
줄무늬는 왜들 그러나 보기 위해서 가장자리로 부비고 나갔습니다.
찬란한 노란 날개를 가진 한 마리의 생명체가 기둥 주위를 자유롭게 빙빙 날고 있었습니다.
멋있는 광경이었습니다! 기어올라오지 않고 어떻게 이처럼 높이까지 올 수 있었을까?
줄무늬 애벌레가 머리를 내밀었을 때 그 날개 달린 존재가 그를 알아보는 것 같았습니다. 그 존재는 두 다리를 뻗쳐서 그를 움켜잡으려 했습니다.
줄무늬 애벌레는 끌려나가기 직전에 몸을 움츠렸습니다. 그러자 그 빛나는 존재는 그를 놓아 주고는 슬픈 듯이 그의 두 눈을 들여다보았습니다.
그 눈길은 줄무늬 애벌레가 기둥을 본 뒤로는 한번도 느끼지 못했던 흥분을 다시 느끼게 해 주었습니다.
지난날에 들었던 이야기가 다시 생각났습니다.
「… 나비들만이.」
「<이것이> 나비란 것인가?」
그렇다면 나머지 말은 무슨 뜻이었을까? –
「꼭대기를 … 그들은 볼 것이다…」
모두 참 이상했지만 짐작이 안 가는 것도 아니었습니다.
그리고 노랑 애벌레의 것과 흡사한 저 눈길.
혹시… ?
절대 그럴 리가 없다!
하지만 흥분을 좀처럼 가라앉힐 수가 없었습니다.
그는 기쁜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쩌면 이곳에서 빠져나갈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그 존재가 데려다 줄지도 모르는 일이었으니까요.
그러나 이런 일이 정말 일어날 수 있다는 생각이 드는 반면, 그의 내부에서는 또 다른 생각이 고개를 들었습니다. 
이처럼 도망쳐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었습니다.
그 생명체의 눈동자를 들여다보았을 때 거기에는 무한한 사랑이 깃들여 있었습니다. 
그는 자신이 그런 사랑을 받을 자격이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는 삶의 태도를 바꾸고 싶었습니다.
다른 이들을 쳐다보기를 거절했던 지난날들을 보상하고 싶었습니다. 그는 그녀에게 자신의 감정을 이야기하려 했습니다.
그는 꿈틀대며 싸우는 일을 그만두었습니다.
다른 애벌레들이 미친 이를 바라보듯 그를 지켜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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