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텍쥐페리'에 관한 글 27개

어린왕자. 16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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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곱번째 별은 그래서 지구였다.

지구는 그저 그렇고 그런 보통 별이 아니었다! 그곳에는 1백 11명의 왕(물론 흑인 나라의 왕을 포함해서)과 7천명의 지리 학자와 90만명의 장사꾼, 7백 50만명의 술주정뱅이, 3억 1천 1백만명의 허영심 많은 사람들, 즉 약 20억쯤 되는 어른들이 살고 있었다.

전기가 발명되기 전까지는 여섯 대륙을 통틀어 4십 6만 2천 5백 11명이나 되는 가로등 켜는 사람들을 두어야 했다는 이야기를 들으면 여러분은 지구가 얼마나 큰지 짐작이 갈 것이다.

그래서 좀 멀리 떨어진 곳에서 보면 눈부시게 멋진 광경이 벌어지는 것이었다. 그들이 무리지어 움직이는 모습은 마치 오페라의 발레단처럼 질서정연한 것이었다. 맨 처음은 뉴질랜드와 오스트레일리아의 가로등 켜는 사람들의 차례였다. 가로등을 켜고나면 그들은 잠을 자러갔다. 그리고 나면 중국과 시베리아의 가로등 켜는 사람들이 발레 무대에 나타났다. 그들 역시 무대 뒤로 사라지면 러시아와 인도의 가로등 켜는 사람들이 나타나는 것이었다. 그 다음번에는 아프리카와 유럽의 가로등 켜는 사람들, 또 그 다음에는 남아메리카의 가로등 켜는 사람들, 또 그다음에는 북아메리카의 가로등 켜는 사람들이 차례로 나타났다. 그런데 그들은 무대에 나타나는 순서를 한 번도 엇갈리는 법이 없었다. 그것은 무척 장엄한 광경이었다.

오직 북극의 단 하나밖에 없는 가로등 켜는 사람과 북극에 있는 그의 동료들만이 한가롭고 태평스러운 생활을 하고 있었다. 그들은 일년에 두 번 일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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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01/13 22:58 2002/01/13 22: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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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왕자. 17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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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치를 부리려다 보면 조금 거짓말을 하는 수가 있다. 가로등 켜는 사람들에 대해 내가 한 이야기는 아주 정직한 것은 못 된다. 지구를 잘 알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자칫하면 지구에 대한 잘못된 생각을 가지게 할 수도 있는 이야기였다. 사람들이 지구 위에서 차지하는 자리란 실로 아주 작은 것이다. 지구에서 사는 20억의 사람들이 어떤 모임에서처럼 서로 좀 바작바짝 붙어 서 있는다면 세로 20마일 가로 20마일의 광장으로 충분할 것이다. 그들은 태평양의 아주 작은 섬 한 곳에 몰아넣을 수도 있을 것이다.

물론 어른들은 이런 말을하면 믿지 않을 것이다. 그들은 자신들이 굉장히 많은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여러분들은 그들에게 계산을 해보라고 일러 주어야 한다. 그들은 본시 숫자를 좋아하니까. 그럼 그들은 기분 좋아할 것이다. 하지만 여러분은 그 문제를 푸느라 시간을 허비할 필요는 없다. 그것은 쓸데없는 것이다. 여러분은 내 말을 믿지 않는가.

어린 왕자는 그래서 지구에 발을 들여놓았을때 사람이라곤 통 보이지 않는데 놀랐다. 그가 잘못해서 다른 별로 찾아온게 아닌가 겁이 나 있을때, 달빛같은 고리가 모래 속에서 음직이는 것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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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 어린 왕자가 무턱대고 말했다.

"안녕." 뱀이 말했다.

"지금 내가 도착한 별이 무슨 별이지?" 어린 왕자가 물었다.

"지구야, 아프리카지." 뱀이 대답했다.

"그래...... 그럼 지구에는 사람이 하나도 없니?"

"여긴 사막이야. 사막에는 아무도 없어. 지구는 커다랗거든." 뱀이 말했다.

어린 왕자는 돌 위에 앉아 눈길을 하늘로 향했다.

"누구든 언제고 다시 자기 별을 찾아낼 수 있게 별들이 환히 불밝혀져 있는 건지도 몰라. 내 별을 바라봐. 바로 우리들 위에 있어. 그런데 어쩌면 저렇게 멀리 있지!"

"아름답구나. 여긴 왜 왔니?" 뱀이 물었다.

"난 어떤 꽃하고 골치 아픈 일이 있단다." 어린 왕자가 말했다.

"그래!" 뱀이 대답했다.

그리고 그들은 서로 잠자코 있었다.

"사람들은 어디에 있지? 사막에선 조금 외롭구나......" 어린 왕자가 마침내 다시 입을 열었다.

"사람들 가운데서도 외롭기는 마찬가지야." 뱀이 말했다.

어린 왕자는 한참 바라보았다.

"넌 아주 재미있게 생긴 짐승이구나. 손가락처럼 가느다랗고." 어린 왕자가 말했다.

"그래도 난 왕의 손가락보다도 힘이 더 세단다." 뱀이 말했다.

어린 왕자는 미소를 지었다.

"넌 힘이 세지 못해. 발도 없고. 여행도 할 수 없잖아."

"난 배보다 더 먼 곳으로 너를 데려다 줄 수 있어." 뱀이 말했다.

그는 어린 왕자의 발뒤꿈치에 팔찌처럼 몸을 휘감더니 말했다.

"나를 건드리는 사람마다 그가 나왔던 땅으로 돌려보내 주지. 하지만 넌 순진하고 또 다른 별에서 왔으니까."

어린 왕자는 아무 대꾸도 하지 않았다.

"네가 측은해 보이는 구나. 무척이나 연약한 몸으로 이 돌맹이 투성이의 지구에 있으니. 네 별이 몹시 그리울 때면 언제고 내가 너를 도와 줄 수 있을꺼야. 난......"

"응! 아주 잘 알았어. 헌데 왜 그렇게 줄곧 수수께끼같은 말만하니?"

"난 그 모든걸 해결할 수 있어." 뱀이 말했다.

그리고는 그들은 침묵을 지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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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01/13 22:57 2002/01/13 22: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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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왕자. 18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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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왕자는 사막을 횡단했는데 오직 꽃 한송이를 만났을 뿐이었다. 석 장의 꽃잎을 가진 볼품이라곤 하나도 없는 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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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 어린 왕자가 말했다.

"안녕." 꽃이 말했다.

"사람들은 어디에 있지?" 어린 왕자가 정중하게 물었다.

그 꽃은 언젠가 여행자단의 무리가 지나가는 것을 본적이 있었다.

"사람들이라구? 한 예닐곱 사람 있는것 같아. 몇 해 전에 그들을 본적이 있어. 하지만 그들이 지금 어디 있는지는 알 수 없는 노릇이야. 그들은 바람결에 불려다니거든. 뿌리가 없어서 몹시 어렵게들 살고 있어."

"안녕." 어린 왕자가 말했다.

"안녕." 꽃이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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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01/13 22:56 2002/01/13 22: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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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왕자. 19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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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왕자는 어떤 높은 산 위로 올라갔다. 그가 아는 산이라곤 그의 무릎높이 밖에 안되는 세 개의 화산이 고작이었다. 불꺼진 화산은 걸상으로 이용하곤 했었다. '이 산처럼 높은 산에서는 이 별과 사람들 모두를 한 눈에 볼 수 있을꺼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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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바늘 끝처럼 뾰족뾰족한 산봉우리만 보일 뿐이었다.

"안녕." 어린 왕자가 혹시나 하고 말해 보았다.

"안녕...... 안녕...... 안녕......" 메아리가 대답했다.

"너는 누구지?" 어린 왕자가 말했다.

"너는 누구지...... 너는 누구지...... 너는 누구지......" 메아리가 똑같이 대답했다.

"내 친구가 되어줘. 나는 외로워." 어린 왕자가 말했다.

"나는 외로워...... 나는 외로워...... 나는 외로워......" 메아리가 대답했다.

"참 얄궂은 별이군! 메마르고 뾰족뾰족하고 험하고, 게다가 사람들은 상상력이 없고 다른 사람이 한 말을 되풀이하니...... 내 별에는 꽃 한송이가 있었지. 그 꽃은 언제나 먼저 말을 걸어왔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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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01/13 22:54 2002/01/13 22: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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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왕자. 20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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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어린 왕자는 모래와 바위와 눈 가운데를 오랫동안 걷고 난 끝에 드디어 길을 하나 발견했다. 그런데 길들이란 모두 사람들 있는 곳으로 통하는 법이다.

"안녕." 어린 왕자가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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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곳은 장미가 만발한 정원이었다.

"안녕." 장미꽃들이 대답했다.

어린 왕자는 그들을 바라보았다. 그들은 모두 그의 꽃과 쏙 빼닮았다.

"너희들은 누구니?" 어린 왕자는 어리둥절해서 물어보았다.

"우리는 장미꽃들이야." 장미꽃들이 말했다.

그러자 어린 왕자는 자신이 아주 불행하게 느껴졌다. 이 세상에 자기와 같은 꽃은 하나뿐이라고 그의 꽃은 그에게 말해 주었던 것이다. 그런데 정원 가득히 그와 똑같은 꽃들이 오천송이나 있다니!"

'내 꽃이 이걸 보면 몹시 상심할 꺼야' 하고 어린 왕자는 생각했다. '기침을 지독히 해 대면서 창피스러운 모습을 보이지 않으려고 죽는 시늉을 하겠지. 그럼 난 간호해 주는 척 하지 않을 수 없겠지. 그러지 않으면 내게 죄책감을 주려고 정말로 죽어 버릴지도 몰라.'

그리고 그는 이렇게 생각했다. '이 세상에 오직 하나뿐인 꽃을 가졌으니 부자인줄 알았는데 내가 가진 꽃은 그저 평범한 한송이 꽃일 뿐이야. 그중 하나는 영영 불이 꺼져 버렸는지도 모를, 내 무릎까지 오는 세 개의 화산과 그 꽃으로 나는 굉장이 위대한 왕자가 될 수는 없어.'

그래서 그는 풀밭에 엎드려 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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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01/13 22:53 2002/01/13 22: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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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왕자. 21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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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우가 나타난 것은 바로 그때였다.

"안녕." 여우가 말했다.

"안녕." 어린 왕자가 얌전히 대답하고 몸을 돌렸으나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난 여기 사과나무 밑에 있어." 좀 전의 그 목소리가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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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넌 누구지? 넌 참 예쁘구나." 어린 왕자가 말했다.

"난 여우야." 여우는 말했다.

"이라 와서 나하고 놀자. 난 아주 슬프단다." 어린 왕자가 제의했다.

"난 너하고 놀 수 없어. 나는 길들어져 있지 않거든." 여우가 말했다.

"아! 미안해." 어린 왕자가 말했다.

그러나 잠깐 생각해 본 후에 어린 왕자는 다시 말했다.

"길들여진다는게 뭐지?"

"너는 여기 사는 애가 아니구나. 넌 무얼 찾고 있니?" 여우가 물었다.

"난 사람을 찾고 있어." 어린 왕자가 말했다. "길들인다는게 뭐지?"

"사람들은 소총을 가지고 있고 사냥을 하지. 그게 참 곤란한 일이야. 그들은 닭도 길러. 그것이 그들의 유일한 낙이야. 너 닭을 찾니?" 여우가 물었다.

"아니야. 난 친구들을 찾고 있어. '길들인다' 는게 무슨 뜻이야? " 어린 왕자가 말했다.

"그건 너무나 잊혀지고 있는 거지. 그건 '관계를 맺는다....' 는 뜻이야. " 여우가 말했다.

"관계를 맺는다고?"

"그래." 여우가 말했다.

" 넌 아직 내겐 수많은 다른 아이들과 다를 바 없는 한 아이에 지나지 않아. 그래서 난 너를 필요로 하지 않고. 너 역시 마찬가지 일거야. 나도 너에게 세상에 흔한 다른 여우와 똑같은 한 마리 여우에 지나지 않아. 하지만 네가 나를 길들인다면, 나는 너에겐 이 세상에 오직 하나밖에 없는 존재가 될거야."

" 무슨 말인지 조금 이해가 가." 어린 왕자가 말했다. "꽃 한송이가 있는데...... 그 꽃이 나를 길들인 걸꺼야......"

" 그럴지도 모르지" 여우가 말했다. "지구는 온갖 것들이 다 있으니까....."

" 아, 아니야! 그건 지구에서가 아니야 " 어린왕자가 말했다.

여우는 몹시 궁금한 기색이었다.

" 그런 다른 별에서의?"

" 그래"

" 그 별엔 사냥꾼들이 있지?"

" 아니. 없어"

" 그거 참 이상하군! 그럼 닭은? "

"없어"

"이 세상에 완전한 데라곤 없군" 여우는 한숨을 내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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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여우는 하던 이야기로 다시 말머리를 돌렸다.

"내 생활은 단조롭단다. 나는 닭을 쫓고 사람들은 나를 쫓지. 닭은 모두 똑같고 사람들도 모두 똑같아. 그래서 난 좀 심심해. 하지만 네가 날 길들인다면 내 생활은 환히 밝아질 거야. 다른 모든 발자국 소리와 구별되는 발자국 소리를 나는 알게 되겠지. 다른 발자국 소리들은 나를 땅 밑으로 기어들어가게 만들 테지만 너의 발자국 소리는 땅 밑 굴에서 나를 밖으로 불러낼 거야. 그리고 저기, 밀밭이 보이지? 난 빵은 먹지 않아. 밀은 내겐 아무 소용이 없어. 밀밭은 나에게 아무것도 생각나게 하지 않아. 그건 서글픈 일이지. 그런데 너는 금빛 머리칼을 가졌어. 그래서 네가 나를 길들인다면 정말 놀라운 일이 일어날 거야. 밀은 금빛이니까, 나에게 너를 생각나게 할거거든. 그럼 난 밀밭 사이를 스치는 바람소리를 사랑하게 될꺼야...."

여우는 입을 다물고 어린왕자를 오래오래 쳐다보더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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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탁이야..... 나를 길들여줘!" 하고 말했다.

"그래. 나도 그러고 싶어" 어린왕자는 대답했다. "하지만 내겐 시간이 많지 않아. 친구들을 찾아내야 하고 알아볼 일도 많아"

"우린 우리가 길들이는 것만을 알 수 있는 거란다" 여우가 말했다. "사람들은 이제 아무것도 알 시간이 없어졌어. 그들은 상점에서 이미 만들어져 있는 것들을 사거든. 그런데 친구를 파는 상점은 없으니까 사람들은 이제 친구가 없는 거지. 친구를 가지고 싶다면 나를 길들여줘"

"그럼 어떻게 해야 하는거지?" 어린왕자가 물었다.

"참을성이 있어야 해" 여우가 대답했다. "우선 내게서 좀 떨어져서 이렇게 풀숲에 앉아 있어. 난 너를 곁눈질해 볼꺼야. 넌 아무말도 하지 말아. 말은 오해의 근원이지. 날마다 넌 조금씩 더 가까이 다가앉을 수 있게 될꺼야....."

다음날 어린왕자는 그리로 갔다.

"언제나 같은 시각에 오는 게 더 좋을꺼야" 여우가 말했다. "이를 테면, 네가 오후 네시에 온다면 난 세시부터 행복해지겠지. 네시에는 흥분해서 안절부절 못할꺼야. 그래서 행복이 얼마나 값진 것인가 알게 되겠지! 아무때나 오면 몇시에 마음을 곱게 단장해야 하는지 모르잖아. 의식이 필요하거든"

"의식이 뭐야?" 어린왕자가 물었다.

"그것도 너무 자주 잊혀지고 있는 거야" 여우가 말했다. "그건 어느 하루를 다른 날들과 다르게 만들고, 어느 한시간을 다른 시간들과 다르게 만드는 거지. 예를들면 내가 아는 사냥꾼에게도 의식이 있어. 그들은 목요일이면 마을의 처녀들과 춤을 추지. 그래서 목요일은 신나는 날이지! 난 포도밭까지 산보를 가고. 사냥꾼들이 아무때나 춤을 추면, 하루하루가 모두 똑같이 되어 버리잖아. 그럼 난 하루도 휴가가 없게 될거고......"

그래서 어린 왕자는 여우를 길들였다. 출발의 시간이 다가왔을 때 여우는 말했다.

"아아! 난 울 것만 같아"

"그건 네 잘못이야. 나는 너의 마음을 아프게 하고 싶지 않았어. 하지만 내가 널 길들여 주길 네가 원했잖아....." 어린왕자가 말했다.

"그건 그래." 여우의 말이었다.

"한데 넌 울려고 그러잖아!" 어린왕자가 말했다.

"그래, 정말 그래" 여우가 말했다.

"그러니 넌 이익본게 아무것도 없잖아!"

"이익본게 있지. 밀밭의 색깔 때문에 말야" 여우가 말했다. 잠시 후 그가 다시 말을 이었다.

"장미꽃들을 다시 가서 봐. 너는 너의 장미꽃이 이 세상에 오직 하나 뿐이란 것을 깨닫게 될 거야. 그리고 내게 돌아와서 작별인사를 해줘. 그러면 내가 네게 한 가지 비밀을 선물할께"

어린왕자는 장미꽃을 보러 갔다.

"너희들은 나의 장미와 하나도 닮지 않았어. 너희들은 아직은 아무것도 아니야" 그들에게 말했다. "아무도 너희들을 길들이지 않았고 너희들 역시 아무도 길들이지 않았어. 너희들은 예전의 내 여우와 같아. 그는 수많은 다른 여우들과 꼭 같은 여우일 뿐이었어. 하지만 내가 그를 친구로 만들었기 때문에 그는 이제 이 세상에서 오직 하나뿐인 여우야"

그러자 장미꽃들은 어쩔 줄을 몰라했다.

"너희들은 아름답지만 텅 비어있어" 그가 계속해서 말했다."누가 너희들을 위해서 죽을 수 없을 테니까. 물론 나의 꽃은 지나가는 행인에겐 너희들과 똑같이 생긴 것으로 보이겠지. 하지만 그 꽃 한 송이는 내게는 너희들 모두보다도 더 중요해. 내가 그에게 물을 주었기 때문이지. 내가 벌레를 잡아준 것(나비 때문에 두세 마리 남겨둔 것말고)도 그 꽃이기 때문이지. 불평을 하거나 자랑을 늘어 놓는 것을, 또 때로는 말없이 침묵을 지키는 것을 내가 귀기울여 들어 준 것도 그 꽃이기 때문이지. 그건 내 꽃이기 때문이지"

그리고 그는 여우에게로 돌아갔다.

"안녕" 그가 말했다.

"안녕" 여우가 말했다. "내 비밀은 이런거야. 그것은 아주 단순하지. 오로지 마음만 보아야 잘 보인다는 거야. 가장 중요한건 눈에 보이지 않는단다"

"가장 중요한건 눈에 보이지 않는단다" 잘 기억하기 위해 어린왕자가 되뇌었다.

"너의 장미꽃을 그토록 소중하게 만드는건 그 꽃을 위해 내가 소비한 그 시간 이란다"

".....내가 내 장미꽃을 위해 소비한 시간이란다" 잘 기억하기 위해 어린왕자가 말했다.

"사람들은 그 진리를 잊어 버렸어" 여우가 말했다. "하지만 넌 그것을 잊으면 안돼. 너는 네가 길들인 것에 언제까지나 책임이 있게 되는거지. 너는 네 장미에 대해 책임이 있어....."

"나는 장미에 대해 책임이 있어....." 잘 기억하기 위해 어린왕자는 되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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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01/13 22:50 2002/01/13 22: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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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왕자. 22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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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녕." 어린 왕자가 말했다.

"안녕." 철도의 전철수(전철기를 조정하는 사람)가 말했다.

"여기서 뭘 하고 있어?" 어린 왕자가 물었다.

"한 꾸러미에 천여명씩 되는 기차 손님들을 꾸러미 별로 가려내고 있어. 그들을 싣고 가는 기차들을 어느 때는 오른쪽으로, 어느 때는 왼쪽으로 보내는 거지." 전철수가 말했다.

그 때 불을 환히 밝힌 급행 열차 한 대가 천둥처럼 소리를 내며 조종실을 뒤흔들었다.

"저 사람들은 몹시 바쁘군. 그들은 뭘 찾고 있지?" 어린 왕자가 물었다.

"기관사 자신도 몰라." 전철수가 말했다.

그러자 이번에는 반대 방향에서 두번째 불을 밝힌 급행 열차가 소리를 냈다.

"그들이 벌써 되돌아오는 거야?" 어린 왕자가 물었다.

"아까와 같은 사람들이 아니지. 두 기차가 서로 엇갈리는 거야."

"그들은 있던 곳에서 만족하지 않았나 보지?" 어린 왕자가 물었다.

"사람들은 그들이 있는 곳에서는 언제나 만족하지 않는단다." 전철수가 말했다.

그러자 세번째의 불을 밝힌 급행 열차가 우렁차게 달려왔다.

"저 사람들은 먼저번 승객들을 쫓아가고 있는거야?" 어린 왕자가 물었다.

"그들은 아무도 쫓아가고 있지 않아. 그들은 저 속에서 잠을 자거나 아니면 하품을 하고 있어. 오직 어린아이들만이 유리창에 코를 납짝 대고 있을 뿐이지." 전철수가 말했다.

"어린아이들만이 자신이 무엇을 찾고 있는지를 알고 있어." 어린 왕자가 말했다. "그들은 누더기 같은 인형을 찾는라 시간을 허비하지. 그것은 그들에겐 아주 중요한 게 되거든. 그래서 사람들이 그것을 빼앗아 가기라도 하면 어린아이들은 울지......"

"아이들은 행복하군." 전철수가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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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01/13 16:35 2002/01/13 16: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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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왕자. 23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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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녕." 어린 왕자가 말했다.

"안녕." 장사꾼이 말했다.

그는 갈증을 풀어주는 새로 나온 알약을 파는 사람이었다. 일주일에 한 알씩 먹으면 마시고 싶은 욕망을 영영 느끼지 않게 되는 약이었다.

"왜 그럴 팔아?" 어린 왕자가 말했다.

"그건 시간을 굉장히 절약하게 해주거든. 전문가들이 계산을 해보았어. 매주 오십 삼분씩 절약된다는 거야." 장사꾼이 말했다.

"그 오십 삼분으로 뭘하지?"

"하고 싶은걸 하지......"

'만일 나에게 마음대로 쓸 수 있는 오십 삼분이 있다면 맑은 샘을 향해 천천히 걸어갈 텐데......" 하고 어린 왕자는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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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01/13 16:34 2002/01/13 16: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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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왕자. 24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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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막에서 비행가가 고장을 일으킨지 여드레째 되는 날이었다. 나는 비축해 두었던 물의 마지막 남은 한 방울을 마시며 장사꾼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있었다.

"네 체험담은 참 아름답구나. 하지만 난 아직도 비행기를 고치지 못했어. 마실 거라곤 없고, 샘을 향해 천천히 걸어갈 수만 있다면 나도 정말 행복하겠다!" 라고 말했다.

"내 친구 여우는......" 어린 왕자가 말했다.

"꼬마 친구야, 여우 이야기를 할 때가 아냐."

"왜?"

"목이 말라 죽게 되었으니까 말야......"

어린 왕자는 내 말을 알아듣지 못하고 이렇게 말했다.

"죽어 간다 할지라도 한 친구를 가지고 있었다는 건 좋은 일이야. 난 여우 친구가 있었다는게 기뻐......"

'위험이 어느 정도인지 짐작을 못하는군' 하고 나는 생각했다. 그는 배고픔도 갈증도 느끼지 않았다. 햇빛만 조금 있으면 그에겐 충분했다.

그런데 그가 나를 바라보더니 내 마음을 안다는 듯 이렇게 대답하는 것이었다.

"나도 목이 말라...... 우물을 찾으러 가......"

나는 소용없다는 몸짓을 했다. 광활한 사막 한 가운데에서 무턱대고 우물을 찾아나선다는건 터무니 없는 짖이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우리는 걷기 시작했다.

몇 시간 동안을 말없이 걷고 나니 해가 지고 별들이 불을 밝히기 시작했다. 심한 갈증으로 나는 열이 조금 나고 있었으므로 그 별들이 마치 꿈 속에서처럼 시야에 들어왔다. 어린 왕자의 말이 내 기억 속에서 춤을 추고 있었다.

"너도 목이 마르니?" 내가 물었다.

하지만 그는 내 물음에 대답하지 않고 그저 이렇게만 말했다.

"물은 마음에도 좋은 것일 수 있는데......"

나는 그의 대답을 이해하지 못했으나 잠자코 있었다...... 그에게 질문해서는 안된다는 것을 나는 알고 있었다.

그는 지쳐 있었다. 그는 주저 앉았다. 나도 그의 곁에 앉았다. 그러자 잠시 침묵을 지키던 그가 다시 입을 열었다.

"별들은 아름다워. 보이지 않는 한 송이 꽃 때문에......"

나는 "그렇지"하고 대답하고는 말없이 달빛 아래서 주름처럼 펼쳐져 있는 모래 언덕들을 바라보았다.

"사막은 아름다워." 그가 다시 말했다.

그것은 사실이었다. 나는 언제나 사막을 사랑해 왔다. 사막에서는 모래 언덕 위에 앉으면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그러나 무엇인가 침묵 속에서 빛나는 것이 있는 것이다.

"사막이 아름다운 것은 그것이 어딘가에 샘을 숨기고 있기 때문이지......" 어린 왕자가 말했다.

사막의 그 신비로운 빛남이 무엇인가를 나는 문득 깨닫고 흠칫놀랐다. 어린 시절 나는 해묵은 낡은 집에서 살고 있었다. 그런데 전해 오는 이야기에 의하면 그 집에는 보물이 갑춰져 있다는 것이었다. 물론 그것을 발견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고, 그것을 찾으려고 하는 사람도 아마 없었을 것이다. 우리 집은 저 가장 깊숙한 곳에 보물을 감추고 있는 것이었다......

"그래. 집이건 별이건 혹은 사막이건 그들을 아름답게 하는 건 눈에 보이지 않는 법이지!" 내가 어린 왕자에게 말했다.

"아저씨도 내 여우하고 같은 생각이어서 기뻐." 그가 말했다.

어린 왕자가 잠이 들었으므로 나는 그를 안고 다시 걷기 시작했다. 나는 감동되어 있었다. 부서지기 쉬운 보물을 안고 가는 느낌가지 들었다. 마치 이 지구에는 그보다 더 부서지기 쉬운게 없을 것 같은 느낌까지 들었다. 창백한 이마, 감겨있는 눈, 바람결에 나부끼는 머리칼을 달빛 아래에서 바라보며 나는 생각했다. '내가 지금 여기서 보고 있는 건 껍질뿐이야. 가장 중요한 건 눈에 보이지 않아......'

반쯤 열린 그의 입술이 보일 듯 말 듯 미소를 띠고 있었으므로 나는 또 생각했다. '이 잠든 어린 왕자가 나를 이토록 몹시 감동시키는 것은 꽃 한송이에 대한 그의 성실성, 그가 잠들어 있을 때에도 램프의 불꽃처럼 그의 마음 속에서 빛나고 있는 한 송이 장미꽃의 모습이야......' 그러나 그가 더욱 부서지기 쉬운 존재라는 짐작이 들었다. 램프의 불은 잘 보호해 주어야 한다. 그것은 한줄기 바람에도 꺼질 수 있는 것이다.

그리하여 그렇게 걸어가다가 나는 동이 틀 무렵에 우물을 발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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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01/13 16:32 2002/01/13 16: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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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왕자. 25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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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급행열차에 올라타지만 그들이 찾으러 가는게 무엇인지 몰라. 그래서 초조해 하며 제자리에 맴돌고 있어......" 어린 왕자가 말했다.

그리고 그는 다시 말을 이었다.

"그래도 소용없는데......"

우리가 찾아낸 우물은 사하라의 우물과는 달랐다. 사하라의 우물은 그저 모래에 파놓은 구멍같은 것이다. 그런데 그 우물은 마을에 있는 우물과 흡사했다. 그러나 그곳에 마을이라곤 없었다. 그리하여 나는 꿈을 꾸고 있는게 아닌가 싶었다.

"이상하군." 내가 어린 왕자에게 말했다. "모든게 갖추어져 있잖아. 도르래, 물통, 밧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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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웃으며 줄을 잡고 도르래를 잡아당겼다. 그러자 도르래는 바람이 오랫동안 잠을 자고 있을 때 낡은 풍차가 삐걱이듯 그렇게 삐걱거렸다.

"아저씨 들어봐. 우물을 깨웠더니 그가 노래를 불러......" 어린 왕자는 말했다.

나는 그에게 힘든 일을 시키고 싶지 않았다.

"내가 할께. 너에겐 너무 무거워."

나는 천천히 두레박을 우물 둘레의 돌까지 들어올렸다. 나는 그것을 돌 위에 떨어지지 않게 올려놓았다. 내 귀에는 도르래의 노랫소리가 아직도 쟁쟁하게 울렸고, 아직도 출렁이고 있는 물속에서는 햇살이 일렁이는게 보였다.

"이 물을 마시고 싶어. 물을 좀 줘......" 어린 왕자가 말했다.

그러자 나는 , 그가 무엇을 찾고 있었는지 깨달았다.

나는 두레박을 그의 입술로 가져갔다. 그는 눈을 감고 물을 마셨다. 축제처럼 즐거웠다. 그 물은 보통 음료와는 다른 어떤 것이었다. 그것은 별빛 아래에서의 행진과 도드래의 노래와 내 두팔의 노력으로 태어난 것이었다. 그것은 마치 선물을 받았을 때 처럼 마음을 기쁘게 하는 것이었다. 내가 어린 소년이었을 때는 크리스마스 트리의 불빛과 자정미사의 음악과 사람들의 미소의 부드러움이 내가 받는 선물을 마냥 황홀한 것으로 만들어 주었었다.

"아저씨 별의 사람들은 한 정원 안에 장미꽃을 오천송이나 가꾸지만...... 그들이 찾는 것을 거기서 발견하지는 못해......" 어린 왕자가 말했다.

"그럴지도 모르지......"

"그렇지만 그들이 찾는 것은 꽃 한송이나 물 한모금에서도 발겨될 수 있는건데......"

"물론이지." 내가 대답했다.

그러자 어린 왕자는 덧붙였다.

"그러나 눈으로는 보지 못해. 마음으로 찾아야 해."

 

나도 물을 마시고난 후였다. 숨결이 가벼워졌다. 해가 돋으면 모래는 꿀빛깔을 띤다. 나는 그 꿀빛깔에도 행복했다. 괴로워 할 필요가 어디 있겠는가......

"약속을 지켜줘야 해." 어린 왕자가 내게 살며시 말했다. 그는 다시 내 옆에 앉아 있었다.

"무슨 약속?"

"약속했잖아...... 양에게 굴레를 씌워 준다고...... 난 그 꽃한테 책임이 있어!"

나는 끄적거려 두었던 그 그림을 주머니에서 꺼냈다. 어린 왕자는 그림들을 보고 웃으며 말했다.

"아저씨가 그린 바오밥나무들은 뿔 비슷하게 생겼어......"

"아, 그래!""

나는 바오밥나무 그림에 대해 몹시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있었는데!

"여우는 귀가 뿔같애...... 너무 길어!"

그리고 그는 또 웃었다.

"너는 너무 심하구나. 나는 속이 보이거나 안 보이거나 하는 보아 구렁이밖에 못 그린다니까."

"아냐. 괜찮아, 아이들은 알고 있으니까." 그가 말했다.

그래서 난 연필로 굴레를 그렸다. 그 굴레를 어린 왕자에게 주면서 가슴이 미어지는 느낌이었다.

"네가 무슨 계획을 가지고 있는지 모르겠구나......"

그러자 어린 왕자는 그 말에는 대답하지 않고 이렇게 말했다.

"내가 지구에 떨어진지도...... 내일이면 일년이야......"

그리고는 잠시 묵묵히 있던 그가 다시 말을 이었다.

"바로 이 근처에 떨어졌었어......"

그는 얼굴을 붉혔다.

그러자 웬지 모르게 나는 또다시 야릇한 슬픔이 솟구쳤다. 그런데도 한 가지 의문이 떠올랐다.

"그럼 일주일 전 내가 너를 알게 된 날 아침에 사람 사는 고장에서 수천 마일 떨어진 여기서 네가 혼자 걷고 있었던 것은 우연이 아니구나. 떨어진 지점으로 돌아가고 있었니?"

어린 왕자는 다시 얼굴을 붉혔다.

그래서 머뭇거리며 나는 말을 이었다.

"아마 일년이 다 되었기 때문에 그런 거겠지?......"

어린 왕자는 또 얼굴을 붉혔다. 그는 묻는 말에 결코 대답하진 않았으나 얼굴을 붉힌다는 것은 그렇다는 뜻이 아닌가?

"아! 난 두려워져"

그런데 그는 이렇게 대답하는 것이었다.

"아저씨는 이제 일을 해야 해. 아저씨 기계로 돌아가. 난 여기서 아저씨를 기다리고 있을테니 내일 저녁에 돌아와......"

하지만 나는 안심이 되지 않았다. 여우 생각이 났다. 길들여졌을 때 좀 울게 될 염려가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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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01/13 16:30 2002/01/13 1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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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왕자. 26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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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물 옆에는 거의 무너진 낡은 돌담이 있었다. 다음 날 저녁, 일을 마치고 돌아오면서 보니 어린 왕자가 그 위에 걸터 앉아 다리를 늘어뜨리고 있었다. 그리고 이런 말을 하는게 들렸다.

"생각나지 않니? 정확히 여기는 아니야!"

그가 다시 대꾸를 하는 걸로 미루어 또 다른 목소리가 그에게 대답하는 듯 했다.

"아니야, 아니야. 날짜는 맞지만 장소는 여기가 아니야......"

나는 담벽을 향해서 걸어갔다. 보이는 것도 들리는 것도 없는데도 어린 왕자는 다시 대꾸를 하고 있었다.

"......물론이지. 모래 위의 내 발자국이 어디서 시작되었는지 가서 봐. 거기서 날 기다리면 돼. 오늘밤 그리로 갈께."

나는 담벽에서 20미터쯤 떨어져 있었는데 여전히 아무것도 눈에 띄지 않았다.

어린 왕자는 잠시 침묵을 지키다가 다시 말을 이었다.

"네 독은 좋은 거니? 틀림없이 날 오랫동안 아프게 하지 않을 자신이 있지?"

나는 가슴이 두근거려 우뚝 멈춰섰다. 아무래도 무슨 이야기인지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그럼 이제 가봐. 내려갈테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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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제서야 나도 담밑을 내려다보고는 기겁을 하고 말았다! 거기에는 삼심 초만에 사람을 죽일 수 있는 저 노란 뱀 하나가 어린 왕자를 향해 몸을 꼿꼿이 세우고 있지 않은가. 나는 권총을 꺼내려고 주머니를 뒤지며 막 뛰어갔다. 그러나 내 발자국 소리에 뱀은 모래 속으로 스르르 물줄기가 잦아들 듯 미끄러져 들어가더니 가벼운 금속성 소리를 내며 돌들 사이로 조금도 허둥대지 않고 교묘히 몸을 감추어 버렸다.

나는 돌담 밑에 이르러 눈처럼 새하얗게 창백해진 나의 어린 왕자를 간신히 품에 받아 안을 수 있었다.

"이게 도대체 무슨 짓이지? 이젠 뱀들과 이야기를 하고 있으니!"

나는 그가 늘 목에 두르고 있는 그 금빛 머플러를 풀렀다. 관자놀이에 물을 적시고 물을 마시게 했다. 그러나 이제는 그에게 무어라 물어볼 용기가 나지 않았다. 그는 나른 진지한 빛으로 바라보더니 내 목에 두 팔을 감았다. 카빈 총에 맞아 죽어가는 새처럼 그의 가슴이 뛰는 것이 느껴졌다.

"아저씨가 고장난 기계를 고치게 되어서 기뻐. 아저씬 이제 집에 돌아가게 됐지......"

"그걸 어떻게 알지?"

천만 뜻밖에 기계를 고치는 데 성공했다는 걸 그에게 알리려던 참이 아니었던가!

그는 내 물음에 아무 대답도 하지 않고 이렇게 덧붙였다.

"나도 오늘 집으로 돌아가......"

그러더니 쓸쓸히,

"그건 훨씬 더 멀고...... 훨씬 더 어려워......"

무엇인지 심상치 않은 일이 일어나고 있다는 것을 나는 느낄 수 있었다. 나는 그를 어린 아기처럼 품에 꼬옥 껴안았다. 그런데도 내가 붙잡을 사이도 없이 그는 깊은 심연 속으로 빠져들어가고 있는 것만 같은 기분이었다.

그는 물끄러미 아득한 곳을 바라보는 듯한 심각한 눈빛이었다.

"나에겐 아저씨가 준 양이 있어. 그리고 그 양을 넣어 둘 상자도 있고, 굴레도 있고......"

그는 슬픈 미소를 지었다.

나는 오랜 시간을 기다렸다. 그가 조금씩 조금씩 몸이 따뜻해 지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꼬마야, 넌 겁이 났었지......"

그가 무서워하고 있었던 건 틀림없었다! 그러나 그는 부드럽게 웃었다.

"오늘 저녁엔 더 무서울거야......"

영영 돌이킬 수 없는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다는 느낌에 나는 다시금 눈앞이 아찔해졌다. 그 웃음소리를 다시는 들을 수 없게 되리라는 생각이 견딜 수 없는 일임을 나는 문득 깨달았다. 그것은 내게 있어서는 사막의 샘같은 것이었다.

"얘, 네 웃음소리를 다시 듣고 싶어......"

그러나 그는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다.

"오늘 밤으로 꼭 일년이 돼. 나의 별이 내가 작년 이맘때 떨어져 내린 그 장소 바로 위쪽에 있게 될거야......"

"얘, 그 뱀이니, 만날 약속이니, 별이니 하는 이야기는 모두 못된 꿈같은 거 아니니......"

그러나 그는 내 물음에 대답하지 않았다. 그가 말했다. "중요한 건 눈에 보이지 않아."

"물론이지."

"꽃도 마찬가지야. 어느 별에 사는 꽃 한송이를 사랑한다면 밤에 하늘을 바라보는 게 감미로울거야. 별들마자 모두 꽃이 필 테니까."

"물론이지......"

"물도 마찬가지야. 아저씨가 내게 마시라고 준 물은 음악 같은 것이었어. 도르래와 밧줄 때문에...... 기억하지...... 물맛이 참 좋았지."

"그래......"

"밤이면 별들을 쳐다봐. 내 별은 너무 작아서 어디 있는지 지금 가리켜 줄 수가 없어. 그 편이 더 좋아. 내 별은 아저씨에게는 여러 별들 중의 하나가 되는 거지. 그럼 아저씬 어느 별이든지 바라보는게 즐겁데 될테니까...... 그 별들은 모두 아저씨 친구가 될거야. 그리고 아저씨에게 내가 선물을 하나 하려고 해......"

그는 다시 웃었다.

"아, 어린 왕자야. 난 그 웃음소리가 좋다!"

"그게 바로 내 선물이 될꺼야...... 그건 물도 마찬가지야......"

"무슨 뜻이지?"

"사람들에 따라 별들은 서로 다른 존재야. 여행하는 사람에겐 별은 길잡이지. 또 어떤 사람들에겐 그저 조그만 빛일 뿐이고, 학자인 사람에게는 연구해야 할 대상이고. 내가 만난 사업가에겐 금이지. 하지만 그런 별들은 모두 침묵을 지키고 있어. 아저씬 어느 누구도 갖지 못한 별들을 갖게 될거야......"

"무슨 뜻이니?"

"밤에 하늘을 바라볼 때면 내가 그 별들 중의 하나에 살고 있을 테니까. 내가 그 별들 중의 하나에서 웃고 있을 테니까, 모든 별들이 다 아저씨에겐 웃고 있는 것처럼 보일거야. 아저씬 웃을 줄 아는 별들을 가지게 되는 거야!" "

그리고 그는 웃었다.

"그래서 아저씨의 슬픔이 가셨을 때는 (언제나 슬픔은 가시게 마련이니까) 나를 안 것을 기뻐하게 될거야. 아저씨는 언제까지나 나의 친구로 있을 거야. 나와 함께 웃고 싶을거고. 그래서 이따금 그저 괜히 창문을 열게 되겠지...... 그럼 아저씨 친구들은 아저씨가 하늘을 바라보며 웃는 걸 보고 굉장히 놀랄테지. 그러면 그들에게 이렇게 말해줘. <그래, 별들을 보면 언제나 웃음이 나오거든!> 그들은 아저씨가 비쳤다고 생각하겠지. 난 그럼 아저씨에게 못할 짓을 한 셈이 되겠지......"

그리고는 그는 다시 웃었다.

"별들이 아니라 웃을 줄 아는 조그만 방울들을 내가 아저씨에게 한아름 준 셈이 되는 거지......"

그리고 그는 또 웃었다. 그러더니 다시 심각한 표정이 되었다.

"오늘밤은...... 오지 마."

"난 네 곁을 떠나지 않겠어."

"난 아픈 것 같이 보일거야...... 꼭 죽는 것처럼 보일거야. 그러게 마련이거든. 그런걸 보러 오지마. 그럴 필요 없어."

"난 네 곁을 떠나지 않겠어."

그러나 그는 근심스러운 빛이었다.

"내가 이런 말 하는건...... 뱀 때문이야. 뱀이 아저씨를 물면 안되거든...... 뱀은 무서워. 괜히 장난삼아 물기도 하거든......"

"난 네 곁을 떠나지 않을꺼야."

그러나 무슨 생각을 했는지 그는 안심하는 듯 했다.

"두번째 물 때는 독이 없다는게 사실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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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밤 나는 그가 길을 떠나는 걸 보지 못했다. 그는 소리없이 사라져 버린 것이었다. 뒤쫓아가서 그를 만났을 때 그는 빠른 걸음으로 주저없이 걸어가고 있었다. 그는 그저 이렇게 말할 뿐이었다.

"아! 아저씨 왔어......"

그리고는 내 손을 잡았다. 그러나 그는 다시 걱정을 했다.

"아저씨가 온 건 잘못이야. 마음 아파할 텐데, 내가 죽은 듯이 보일테니까. 정말로 죽는건 아닌데......"

나는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그는 조금 풀이 죽어 있는 듯이 보였다. 그러나 그는 다시 기운을 내려 애쓰고 있었다.

"참 좋겠지. 나도 별들을 바라볼꺼야. 모든 별들은 모두 내게 녹슨 도르래가 있는 우물로 보이게 될 테니까. 별들이 모두 내게 마실 물을 부어 줄 거야......"

나는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참 재미있겠지! 아저씬 오억 개의 작은 방울들을 가지게 되고 난 오억개의 샘물을 갖게 될테니......"

그리고는 그 역시 더 이상 아무말이 없었다. 그는 울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저기야. 나 혼자 걸어가게 내버려 둬 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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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더니 그는 그 자리에 앉았다. 무서웠기 때문이었다.

그가 다시 말했다.

"아저씨...... 내 꽃 말인데...... 나는 그 꽃에 책임이 있어! 더구나 그 꽃은 몹시 연약하거든! 너무나 순진하고, 쓸모 없는 네개의 가시를 가지고 외부 세계에 대해 자기 몸을 방어하려고 하고......"

나는 더 이상 서 있을 수가 없어 주저 앉았다. 그가 말했다.

"자...... 이제 다 끝났어......"

그는 또 잠깐 망설이더니 다시 일어섰다. 한 발자국을 내디뎠다. 나는 꼼짝도 할 수가 없었다.

그의 발목에서 노오란 한 줄기 빛이 반짝햇을 뿐이었다. 그는 한순간 그대로 서 있었다. 그는 소리치지 않았다. 나무가 쓰러지듯 그는 천천히 쓸러졌다. 모래 바닥이라 소리조차 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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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01/13 16:26 2002/01/13 16: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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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왕자. 27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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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까 그게 벌써 여섯 해 전의 일이었다......

이 이야기를 나는 아직까지 한 번도 해 본 적이 없다. 나와 다시 만난 친구들은 내가 살아 돌아온 걸 매우 기뻐했다. 나는 슬펐지만 피곤 때문에 그렇게 보일 뿐이라고 그들에게 말했다.

이제는 내 슬픔도 약간 가셨다. 다시 말해...... 완전히 싹 가셔버린 것은 아니라는 뜻이다. 하지만 나는 그가 그의 별로 돌아갔다는 걸 알고 있다. 다음날 해가 떴을 때 그의 몸을 다시 찾아볼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의 몸은 그리 무겁지 않았다...... 그래서 밤이면 나는 별들에게 귀기울이기를 좋아한다. 그것들은 흡사 오억개의 작은 방울들 같았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 일어나고 있지 않은가! 어린 왕자에게 그려준 굴레에 가죽끈을 달아준다는 걸 내가 잊어버린 것이다. 그래서 나는 '그의 별에게 무슨일이 일어나고 있을까? 양이 꽃을 먹었을까......' 하고 궁금해 하곤 했다.

어느 때는 '천만에, 먹지 않았겠지! 어린 왕자는 그의 꽃을 밤새도록 유리덮개로 잘 덮어 놓겠지. 양을 잘 지킬테고......' 라고 생각해 본다. 그러면 나는 행복해진다. 그러면 모든 별들이 부럽게 웃는다.

어느 때는 '어쩌다가 방심할 수도 있지. 그러면 끝장인데! 어느날 밤 유리 덮개 덮는 것을 잊었거나 양이 밤중에 소리없이 밖으로 나왔을지도 몰라......'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러면 작은 방울들은 모두 눈물 방울들로 변한다!

 

그것은 정말 커다란 수수께끼다. 어린 왕자를 사랑하는 여러분에게는 나에게도 그렇듯이 이 세상 어딘가에서 우리가 알지 못하는 한 마리 양이 한 송이 장미꽃을 먹었느냐 먹지 않았느냐에 따라서 천지가 온통 달라지게 될 것이다.

하늘을 바라보라. 생각해 보라. 양이 그 꽃을 먹었을가 먹지 않았을까? 그러면 거기에 따라 모든 것이 얼마나 달라지는지 여러분은 알게 되리라.

그런데 그것이 그다지도 중요한가를 어른들은 아무도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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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은 나에게는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고 그리고 가장 슬픈 풍경이다. 이것은 앞 페이지의 것과 같은 풍경이지만 여러분에게 잘 보여주기 위해 다시 한 번 그린 것이다. 어린 왕자가 지상에 나타났다가 다시 사라진 곳이 여기다.

이 그림을 자세히 잘 보아 두었다가 여러분이 언젠가 아프리카 사막을 여행할 때, 이와 똑같은 풍경을 꼭 알아 볼 수 있기를 바란다. 그리고 혹시 그리로 지나가게 되거든 발걸음을 서두르지 말고 잠깐 별빛 밑에서 기다려 보길 간곡히 부탁한다! 그때 만일 한 어린아이가 여러분에게 다가와서 웃으면, 그리고 그의 머리칼이 금빛이면, 그리고 묻는 말에 대답을 하지 않으면 여러분은 그가 누구인지 알아챌 수 있으리라. 그러면 내게 친절을 베풀어 주길! 내가 이처럼 마냥 슬퍼하도록 내버려 두지 말고 그애가 돌아왔다고 빨리 편지를 보내 주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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